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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 오늘 계확대로라면 친구와 함께 순천에 가서 구경하다가 일박하고 오는 것이었다.
일부러 일정을 그렇게 조정해 놓았지만 친구가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어쩔 수 없이 순천은 포기하고 나름 가까운 해운대에서 만남을 가졌다.
그동안 각자에게 힘든 일들이 있어서 언젠가 만나 그걸 얘기하려던 참이었는데 이번 만남에서는 미묘하게 어긋난 얘기들로 시간을 채워나갔다.
간단하게 치킨에 맥주 한병을 곁들여서 나눠먹고 2차로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빵을 먹고 백사장에서 바다를 보며 맥주한잔 하며 시간을 보냈다.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어디서 하루쯤 자고 올 줄 알았지만 처음부터 약간 어긋난 만남이라서 그런가 잠깐 만나고 돌아갈 요량이었나 보다.
맥주를 마시면서 뭐 특별할게 없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소주로 입을 달궈야 속에 있는 말들이 녹아서 나오는 법인데 소주를 먹지 않으니 아무래도 힘든 것이다
뭐 그래도 먼 내일이 있기에 괜찮다.
2.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모른다.
서로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하는 건 사실 착각이라 생각한다.
또 서로에 대해서 잘 알아서도 안된다.
마음속에 보관해둔 한켠의 방까지 낱낱이 알게 된다면 서로는 서로에게 흥미를 잃어 곧 떠날 것이다.
아무리 막역한 사이라고해도 어느정도의 거리는 필요하다고 본다.
3.
해운대 거리를 활보하던 중 우연히 그녀를 봤다.
머리가 단발로 바뀌어서 지나칠 뻔했지만 결국 내 쓸데없는 직감의 촉수가 나와버려 보게 된 것이다.
친구는 아니라고 했지만 내 직감은 틀리지 않았고 작은 키 옷 스타일 목소리 모든 게 그녀였다.
아 차라리 못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 마음속에 죽은 줄 알았던 서글픈 감정의 무리들이 다시 일어나 나를 찔러대는 것이다.
그녀 옆에는 다른 남자가 있었고 둘의 온기는 멀리서도 전해져 왔다.
나는 친구와 멀찍이 떨어져 바라봤다.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그랬던 것일까.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