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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학했다.

묘지위에핀꽃 2018. 3. 9. 22:26

1.

어제 학교에서 개강 총회를 했다. 

조금 늦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학생들이 자리를 거의 빈틈없이 채우고 있어서 조금 당황했다. 교수님들도 다 와 계셨다.

얼굴과 이름을 모르는 한 후배님 옆에 자리가 있어 앉았는데, 총회가 시작된 잠시 후 내 옆에 있던 후배님이 일어나서 희랍어로 호메로스의 서사시인 <오디세이아>의 구절을 줄줄 외웠다. 다 외운 뒤 우리말로 해석을 했다.

곧 박수가 쏟아졌고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그 친구가 존경스러웠다.



2.

뒤풀이 회식장소로 이동했는데 전공 교수님이 나를 포함한 복학생들을 따로 데리고 술 한잔 사주겠다며 다른 술집으로 가자고 했다.

복학생 몇몇 애들은 신입생들 혹은 재학생들과 친목을 가지려 참석했었던 터라 몰래 나에게 미간을 찌푸려 자신의 감정을 전했다.

나는 교수님과의 술자리가 영광이었으므로 그 친구들에게 같은 신호로 화답해주지 못했다.

재학생 시절 동기들과 가는 허름하지만 안주가 저렴하고 맛있는 술집을 알고 있어 그쪽으로 나는 무리들을 이끌었다.

그 가게는 여전히 허름했고 변한 게 아무것도 없어 자리에 앉으니 편안함이 찾아왔다.

안주로는 목살바비큐, 파전, 두루치기, 닭똥집, 계란말이 등을 순차적으로 시켰고 술은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셨다.

그 집의 맛은 여전했고 오랜만에 먹은 술은 물처럼 잘 들어갔다.

교수님은 원래 목사가 되려다 그 과정에서 실망과 상처를 많이 받아 포기하고 철학을 선택했다고 했다. 전공은 해석학.

나에게 교수님이 장남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교수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남의 그 무엇이 느껴진다고 했다.

술을 마시며 교수님 자신의 인생사와 조언 등을 여럿 들려주었다.

나는 속으로 교수님의 인상이 참 부드럽다고 생각했다. 알코올이 정신을 흐리게 만들어도 교수님의 맑은 정신은 빛을 잃지 않았다.

술자리가 파할 무렵이 가까워지자 교수님은 우리 복학생들을 '독수리 오형제' 라고 부른다고 했고 다음에도 술을 사주신다고 했다.

내 동기 중 한 명의 번호를 '독수리대장 '으로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해 놓고 장학금을 꼭 타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우리 복학생들은 교수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택시 타는 곳까지 모셔다드렸다.



3.

나는 집에 가고 싶었지만 동기들이 2차 장소로 끌고 갔다. 그곳에 신입생과 재학생들이 있다면서.

술집에 들어갔더니 아주 난리다. 이미 반 이상은 정신이 육체에서 해방되어 떠도는 것이었다. 물론 나도 그때 정상은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생각이 다 안 떠오르고 드문드문 떠오르는 걸 보면 말이다.

다들 활기찼고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동기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다가 목이 너무 말라서 앞에 있는 물컵을 벌컥벌컥 마셨는데 모두 소주였다.

아마 그때부터 였을 것이다. 기억이 끊긴 지점이...

한가지 기억나는 것은, 밖에 나가서 담배를 태우는데 신입생인지 재학생인지 모를 한 여자애가 다가와 함께 담배를 피웠던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나에게 하는 말이 "원래 말을 아끼는 편인가요?"라는 것 정도...가 기억난다.



4.

어떻게 집은 들어갔는데 일어나니 뇌가 알콜에 푹 절인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 창문 쪽을 봤는데 하늘과 구름이 터무니없이 예뻐 한동안 누워서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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